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Ⅰ 부 사무엘: 왕도 없고 여호와의 말씀도 희귀함 (삼상 1-7) 제 2 장 법궤: 무가치한 매력, 거룩한 공포 (삼상 4-7)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4:1)고 성경이 선언한 직후부터 사무엘은 세 장에 걸쳐, 20년 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7:3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와의 관계를 새로이 할 때까지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생기기 전에 여호와의 언약궤에게 생긴 일들—빼앗김, 포획, 돌아옴—이 세 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61.1)
 그러고 나서 7장은 약 20년 후에 법궤가 돌아왔고 하나님의 백성은 큰 위험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사무엘의 도움으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았고, 땅에서 얼마 동안 평안을 누렸고, 그것에 대하여 몇 절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태풍전의 고요함이었다. 8장에서 늙은 사무엘은 그의 악한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한다. 백성들은 질렸다고 말하며, “열방과 같이” 왕을 달라고 요구하였다(5절). (61.2)
 그러면 본 장에서 우리는 왕정의 문턱에 서게 된다. 우리는 다시 두 가지 기별을 듣게 된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기 직전의 역사; 둘째로, 왕정이 오고 가고 한 역사적 관점에서 그 사건들을 바라보는 예언적 반응, 이것은 이스라엘이 섬긴 하나님에 의하여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61.3)
 ■ 말씀에 들어감
 사무엘상 4-7장을 연구할 때에 아래의 네 사항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라. 그리고 이 장들을 한꺼번에 두 번 읽고 사무엘상 1-3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라. 각 주제를 위하여 백지 한 장씩 준비하고 각 상황에 맞는 국면들을 요약 형태로 쓰라. (62.1)
 1. 법궤: 위험과 기쁨. 소들이 휘청거릴 때에 법궤를 받들려고 하다가 웃사가 죽은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이다. 사무엘하 6장을 읽으면서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라. 그리고 사무엘상 4-6장에 있는 법궤의 이야기를 숙고하고 세 가지로 나누어 기록해 보라:

 (A) 법궤가 축복을 가져온 사건들,

 (B) 법궤가 불운한 일과 연결된 사건들,

 (C) 법궤가 응당 큰 영향력을 행사했어야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범상하고 무력하게 된 사건들.

 만일 법궤가 축복이나 불행을 초래하는 사건들을 선택하든지, 또는 아무것도 초래하지 않은 사건들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대는 법궤의 능력이 어떤 일을 하도록 설정하였을지를 간단한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62.2)
 2. 참 종교와 거짓 종교.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태도나 행동이 드러난 구절들을 간단히 묘사하라. 그리고 이 사건들에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요약하고, 적극적이었는지, 소극적이었는지, 아니면 아예 없었는지를 지적하라. (62.3)
 3. 외지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 여호와께서 이교의 블레셋 사람들과 직접 일하시는 방법을 열거하라. 간단히, 이 이야기가 자기 우리에 들지 않은 백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요약하라. (62.4)
 4. 지도를 살펴라. 성경에 있는 지도나, 성경 사전(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사전에는 좋은 지도가 있다)에 있는 지도를 사용하여 이 장들에 나오는 지명들을 살펴보라. 3:20에 의하면, 사무엘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이 위치와 7:16, 17에 나온 사무엘이 직접 봉사한 장소들과 비교하라. 그대는 이스라엘 전체의 종교 생활에 끼친 사무엘의 직접적인 영향이 어떠했다고 생각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기록하라. (62.5)
 ■ 말씀을 탐구함
 영광이 떠났다(4:1-22)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군사적 대치 때문에 사무엘상의 이 부분에서 법궤는 무대의 중심에 던져졌다. 이스라엘(히브리어 성경, 「새국제역」)과 블레셋(헬라어 성경, 「새개정표준역」) 중에 누가 먼저 적대하기 시작했는지에 상관없이, 그 결과는 참혹하고 분명하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휩쓸면서 4,000명이나 죽였다. (63.1)
 진영에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자문하였다: “여호와께서 왜 이 일을 허락하셨는가?”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는 그들이 심각히 마음을 살핀 흔적이 없다. 순간적인 상황 대치를 한 것이다: “실로로부터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오자. 그것이 우리와 함께 갈 것이고,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다”(4:3). (63.2)
 성경의 다른 곳에서 법궤가 이토록 큰 관심의 초점이 된 적이 없다. 그러나 결국 법궤의 빼앗김, 끌려 다님, 그리고 귀환에 직접 관계된 사람들이 그 결과로 아무런 영적 유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서의 기자는 법궤가 사라진 뒤에 살던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는 거침돌이 되었고 그 이웃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되었던 금 상자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우기를 기대하였던 것 같다. (63.3)
 놀랍게도 성경은 법궤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늘에 있는 언약궤(계 11:19)에 대한 언급 외에는 신약에서 오직 히브리서 9:4-5에 성전 기구를 나열할 때 언급되는데, 저자는 거기서 얼른 다른 주제로 들어가기 원한다. “[우리가]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고 썼다. 그러나 그는 지금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쓰지 않았다. (64.1)
 언약궤에 대한 구약의 언급도 마찬가지로 드물다. 오경과 역사서(“전(前)” 선지서) 밖에서는 시편 132:8예레미야 3:16에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구절은 가르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약궤를 마술 상자로 간주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면서 예레미야는 선언하였다: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이와 비슷하게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악한 행위로 성전을 “도적의 굴혈”(7:11)로 전락시키고도 그것을 존귀하게 치켜세우는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비웃었다(4절). 예레미야는 말한다: 개혁이 없으면 성전은 또 다른 실로가 될 것이라고(12절). (64.2)
 지금 우리는 실로에 와 있다. 솔로몬 성전의 연기 나는 폐허로부터 사무엘서의 저자는 우리를 더 먼저 있던 성소로 데려가고, 언약궤의 맛을 세 장에 걸쳐 보여준다. 성물과 성소들과 성민의 차이를 우리가 알도록 돕고 있다. (64.3)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법궤를 앞장 세워 전쟁에 나갈 때에 그들은 고상한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법궤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시내 산에서부터 이동(민 10:33-35), 요단 강을 건널 때(수 3:4), 여리고 성을 돌 때(수 6)—에서 자주 길을 인도하였다. 한 군데 민수기 14:44에서 성경은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는데, 백성이 참람되게 전쟁에 나가 가나안 경계에서 아말렉에게 참패하는 것을 묘사하면서 군사적 패배를 언약궤가 없었다는 사실과 직접 연결시킨다. 그런 기록이 있으므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진중으로 가져왔을 때에 힘찬 함성이 울린 것도 당연하다(삼상 4:5). (64.4)
 대조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은 큰 소리의 이유를 알고 얼어붙었고 그 공포 속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 이상한 내용을 집어넣었다: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7-9절). (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