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2장 천문학의 여명에 제2절 갈대아 사람들의 지혜-점성술
 5. 바빌로니아 역법과 7요일 명칭 유래
 해와 달 그리고 다섯 혹성신들을 위해 일곱 개의 층대로 구성된 보르십파의 7층 신전탑 에지다(Ezida) 신전을 볼 때 우리는 일곱 혹성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숭배받을 수 있도록 일곱 제단들로 성별 되었다는 것을 즉각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혹성신들이 각각 자기 제단에서 별도로 숭배 받을 수 있는 각각의 자기 날들이 구별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선뜻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의 끈질긴 노고로 인하여 그 수수께끼 같은 의문들이 풀리었다. 그것은 실로 또 하나의 성서 고고학의 위대한 개가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최초의 학자는 1852년에 동료 고고학자들과 함께 프랑스의 발굴대를 지휘 감독하면서, 바빌론 성 폐구 주변의 세 개의 언덕을 탐사하는 중에 “색칠한 기와들, 글쓴 벽돌들, 둥근 흙 비석들”52)을 발굴하여 이것들을 판독한 프랑스의 앗시리아학 학자 오페르(Jules Oppert, A.D. 1825-1905)였다. 그는 그의 발굴 작업을 마치면서 작성한 그의 보고서53)에 자신이 판독한 쐐기 문자로 된 한 점토판 조각에서,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혹성 신의 이름들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7요일 명칭과 똑같은 이름이 수록된 문서라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158.4)
 이 오페르의 보고서에 남달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 검토한 독일 베를린 대학의 쉬라더(Eberhard Schrader, A.D. 1836-1908) 교수는 주일 명칭이 바로 바벨론에서 기원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1873년에 발간한 동 대학교 학회지(Theologische Studien und Kritiken, 1873, 343ff.)에 “7요일의 바벨론 기원”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므로 학계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그의 이 논문에서 주장하기를 오페르가 발굴하고 판독한 셈어로 된 쐐기문자의 혹성신들의 이름은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7요일 명칭의 이름과 똑 같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59.1)
“샤마쉬(Shamash)는 태양신이고, 신(Sin)은 월신이었으며, 네르갈(Nergal)은 [앵글로-색슨 족의] 직시스(Zixis 또는 Tix) 곧 화성신이고, 네보(Nebo)는 [로마 사람들의] 머큐리(Mercury) 신이요, [앵글로-색슨 족의] 워단(Wodan) 신으로서 그 별은 수성신이며, 마르둑(Marduk) 신은 [앵글로 색슨 족의] 토르(Thor) 신으로서 그 별은 목성 신이고, 이쉬타르(Ishtar)는 [로마 사람들의] 베누스(Venus) 여신이요, [게르만인들의] 프라이아(Freia) 여신 곧 금성 신이요, 아다르(Adar) 또는 닌-이브(Nin-Ib)는 [로마 사람들의] 사투른(Saturn) 신 곧 토성신이었다.”
(159.2)
 이 쉬라더 교수의 논문을 읽고, 그의 주장에 동의를 나타낸 학자들이 많이 출현했는데, 그 중에서도 저명한 영국의 동방학자 세이스(Arch- bald H. Sayce, A.D. 1845-1933)는 퀸스 대학(Queen's College)에서 1875년 11월 22일에 기록한 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59.3)
 

라르사의 숭배자. B. C. 17세기 르부르 미술관 소장. 파리
(160.1)
“처음에 오페르가 발견한 이래, 현재로서는 쉬라더 교수가 보다 더 충분히 7요일이 바벨론 기원임을 명확히 지적해냈다. 악갓인들 사이에는 7은 성수였다. 그리고 또 그들의 태음력은 초창기에는 각각 7일씩의 기간으로 구분되었다. 그 7일들은 해와 달 그리고 다섯 혹성들에게 봉헌되었다. 그래서 그 날들을 각각 관장했던 것이다.... 근자에 발굴된 단편들 중 하나는 갈대아 사람들의 창조설에 관한 소견서로 간주되는 것인데, 거기에 ‘주일의 주역들’이라고 불린 별들의 관직이 명확하게 언급된 문서였다.”54)
(160.2)
 그후 오페르가 그것을 발견한 지 30년만에 미국의 유니언 대학 신학대학원장 브라운(Francis Brawn) 박사가 1882년 10월 호의 장로교 기관지(Presbyterian Review, 689-691)에 기고한 “쐐기 문서에 나타난 안식일”이란 논문에서 이 주제를 다시 다루었다: (160.3)
“오페르는 천문학과 연관된 한 점토판에서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개의 혹성들과 주일의 날들과의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주일의 일곱 날들의 명칭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기원되었음을 드디어 쉬라더 교수가 논증하였던 것이다.... 오페르는 숫자상 일곱이고, 그 각각이 신과 관련이 있는 혹성들의 목록표 즉 그 전체 목록이 그 신들과 일치 또는 상응하는데, 그 신들의 이름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통용되고 있는 목록이 포함된 쐐기 문자 점토판에 대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환기시킨 그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55)
(160.4)
 이리하여 학계에서는 이 7요일 명칭이 바빌로니아에서 유래되었음이 널리 인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의 순서로 배열된 그 순위가 어떤 법칙 또는 무엇에 근거하여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다. 그런데 그 해답은 바로 7층 신전탑에 배열된 일곱 혹성신들의 제단 배열 순위에서 학자들은 찾아냈다. 즉 제일 밑층부터 토성 닌-이브, 목성 마르둑, 화성 네르갈, 태양 샤마쉬, 금성 이쉬타르, 수성 네보, 그리고 제7층에 안치된 달 신의 순서로 배열된 제단 그 자체가 설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갈대아 점성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천동설에 입각한 태양계이기도 하다. (161.1)
 이 7층 신전탑에서 일곱 혹성신들에게 제사 드려왔던 사제들에 의해 그 혹성신들 각각의 숭배일이 제정되었는데, 실은 이들 사제들이 바로 유명한 갈대아의 점성학자들이었으며, 동시에 천문학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정한 이 일곱 혹성들의 제일(祭日)들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7요일 명칭인 것이다. 즉, 일요일은 태양 샤마쉬 신에게 그의 제단에서 제사한 태양신 숭배일이요, 월요일은 달신에게 그의 제단에서 제사한 월신 숭배일이었다. (161.2)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꽃방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은 함족 계열인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시대부터였다. (161.3)
“달빛은 고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었으나, 이 달빛이 정확한 주기를 지키면서 찾다 기울었다 하는 것은 고대 사람에게 있어서는 용이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주기가 29일 반을 가지고 정확하게 되풀이되는 것은 고대인에게 우주가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단서가 되었고 이밖에 천문 현상에도 몇인가 법칙이 있음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56)
(161.4)
 그리고 태양은 1년의 주기를 두고 반복되는 것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천문 현상의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하나 둘씩 표기해 가는 동안 천문과 수학의 발달로 역법을 알아냈다. 처음에는 1년을 354일 12월로, 1달은 29일과 30일로 했다. 하루를 12시간, 1시간은 30분으로 환산하였다. 이 역법을 소위 바빌로니아의 태음력57)이라 한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수학자 노이게바우어(Otto E. Neugebauer, A.D. 1899-?) 교수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162.1)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칼렌다는 전기간 동안 순수한 태음 역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달은 일몰 직후 ... 새로운 초승달이 첫번 보일 때의 그날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날은 역시 저녁부터 시작됐고, 한 달의 첫날은 첫번째 볼 수 있었던 그 날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해서 하나의 달의 시작은 직접 관찰한 결과에 순응하는 자연 현상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이다.”58) (162.2)
 

달의 변화
 이 태음력은 하루가 히브리 사람들처럼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로 하여 “하나의 태양” 즉, 일일(一日)이라 했고, “연수를 추분 경에 월초를 초생달이 보일 때, 하루의 처음을 해가 지는 때 하였다.”59) (163.1)
 그런데 이 바벨론의 태음력은 1년의 주기가 천문상의 1회귀년, 즉 추분에서 추분까지의 주기와 맞지 않기 때문에 다음의 연수가 추분 경에 미치기 약 11-12일 전에 시작되어버리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윤년을 두었는데 “B.C. 6세기에는 8년 법이 행해졌으며 그 후에 19년 법이 사용되었다.”60) 이 개정 역법이 소위 바빌로니아의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이며, 이 “19년 법”61)의 새 역법을 사용하면서 그들은 연수를 추분에서 춘분으로 옮겼다. 환언하면 해의 시작을 가을에서 봄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환산했다. 이 무렵이 셈족 계열의 갈대아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최고도로 꽃피운 때였다. 이 갈대아 사람들은 수메르 사람들이 물려준 점성술적 종교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천문상의 지식을 이어받아 셈어로 고쳐서 하나의 점성학적 학문으로 승화 발전시켜 왔었다. (163.2)
 

바빌로니아의 60진법
 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수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10진법(十進法)이고 다른 것은 60진법이었다. 그들은 이 둘을 혼용하여 셈하였다.62) 그래서 그들은 우주를 그들의 성수 “6”으로 60도씩 나누어 360도(6×60°= 360°)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환산했다. 그리고 하루를 24시간으로 환산한 것은 그들이 천문학 사상 최초로 발견하였던 “황도 12궁”을 근거로 하여 밤 12지시와 낮 12지시로 셈하여 합 24지시라 생각하고 1일을 24시간으로 산정하였던 것이다.63) 그리하여 이 하루 24시간 동안에 이 일곱 혹성신들이 제1시부터 차례로 매 한시간씩 그 서열(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에 따라 우주와 제국의 판도를 지배하는 것으로 점성학자인 제사장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 그리고 그날의 첫째 시간을 지배하는 혹성신이 그날의 주인 신이라고 가르치고 그 혹성신의 이름을 따라 그 날을 이름지었다.64) 그리고 그날에는 그날의 주인이 되는 혹성신에게 사제들은 그 7층 신전탑에 안치된 그 신의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를테면, 제1시에는 토성 닌-이브 신이 우주와 제국을 지배하고, 제2시에는 목성 마르둑 신이, 제3시에는 화성 네르갈 신이, 제4시에는 태양 샤마쉬 신이, 제5시에는 금성 이쉬타르 신이, 제6시에는 수성 네보 신이, 제7시에는 달 신 신이 온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고 숭배하게 했다. 그리고 제8시에는 다시 토성 닌-이브 신이 제국을 보호해주는 차례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하여 하루 24시간을 차례로 혹성신들의 서열에 따라 배열하면 제24시에는 화성 네르갈 신에 이르고, 그 다음 날의 첫 시간은 태양 샤마쉬 신이 주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날의 첫 시간을 주관하고 지배하는 주신의 이름을 따라 그날의 명칭을 명명했으며 그 신을 그날의 주인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65) 그런데, 샤마쉬 신의 날은 “일요일”“태양신의 날”이라 하여 성대히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이 날은 길일로 생각하는 반면에 토성 닌-이브 신의 날은 토요일로 불길한 날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은 제1시를 주관하는 신이 달이므로 이 날은 “달의 날” 곧 월요일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의 주일의 명칭들이 지어졌다. 그리고 각각 그 해당되는 신에게 그날 이 7층 신전탑에 안치된 그의 제단에서 제사가 드려졌던 것이다.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