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눈으로 본 요한계시록 제2부 하늘은 붉다 제5장—사람들과 짐승들
 666이라는 짐승의 수 역시 그것의 성격과 본분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람의 수”라고 계시록은 설명한다(계 13:18). 성경의 전통은 숫자 6을 인간과 연관 짓는다. 사람이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숫자 6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의 자기 충족감과 자만을 상징한다. 또한 숫자 6은 느부갓네살의 신상을 만드는 데 사용된 기본 숫자이다(단 3:1).6 느부갓네살은 땅의 백성들의 연합을 증진시키고 거룩한 권위를 대체하기 위하여 그것을 세웠다. 숫자 6을 세 번 반복한 것은 하나님의 역할을 찬탈하려는 피조물의 욕망을 암시한다. 실제로, 숫자 3은 하나님의 수이다. 인간의 수를 세 번 반복한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리려는 것이다. 그분은 세 번 거룩한 분이다(사 6:3: 계 4:8). (159.1)
 이 권력을 666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계시록은 그 바다 짐승의 참 본질을 드러낸다. 그 종교성의 가면 뒤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권력에 대한 열망이 잠복해 있다. 교회에게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놀음이다. 콘스탄티누스와 클로비스 이래로 교회는 정치권력을 갈망해 왔다. 때때로 교회에는 정치의 무대에서 발판을 되찾기 위한 것 밖에 다른 관심은 없었다. 교회는 그 영혼을 세상의 인정과 바꾸었고 이제는 땅 짐승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마지막 권력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몇 가지 단서들이 도움이 된다.


  (159.2)
 그것의 본질 : 그것은 바다 짐승과 다르다. 그것은 종교적인 권력이 아니다. 아무 경배도 받지 않는다(계 13:12, 15). 그러나 계시록은 그것의 본질이 경제적인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누가 “팔고 사는지”(17절)를 결정한다. 또한 정치적이다.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15절). (159.3)
 그것의 때 : 그것은 첫 짐승이 나타난 후에 출현하며, 첫 짐승이 그 상처를 회복한 후에 행동을 시작한다(12절). 그러므로 이 권력은 18세기말 이후에야 자신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160.1)
 그것의 영역 : 바다 짐승과는 달리 이 짐승은 땅에서 올라온다. 그 근원지가 다른 것은 히브리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바다가 위협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땅은 친근하고 안심이 된다. 히브리어의 에레츠(erets, 땅)라는 단어는 나라, 모국, 즉 고국을 의미한다.7 에레츠로부터 올라오는 그 짐승은 같은 편으로서 진정시키는 어조로써 자신을 나타낸다. 사실 몇 절 앞에서 계시록은 땅이 여자를 구원하는 것을 보여 준다(계 12:16). (160.2)
 그것의 성격 : 그 짐승의 모습은 해를 입히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첫 인상을 확인해 준다. 두 뿔을 가진 그 짐승은 어린양과 닮았다(계 13:11). 그는 믿을 만하다. 열 뿔과 사나운 모양을 한 바다 짐승은 불순하고 공포스러웠다. 반면에 그 땅 짐승은 순하고 길들여진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인 요한에게 그 새끼 양 같은 모습은 온유한 예수님의 용모를 생각나게 한다(계 14:1). (160.3)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새끼 양은 용처럼 말한다(계 13:11). 그러한 모순적인 특성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순결하고 온순한 이미지를 깨고 새끼 양은 용처럼 포효한다. (160.4)
 퍼즐 조각들을 다 맞추고 나면 기대하지 못했던 모습이 나타난다. 18세기말에 시작된 경제 적·정치적 초강대 권력, 종교적으로 억압받던 사람들의 보금자리인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용처럼 소리를 지르지만 양의 얼굴을 하고 있다. (160.5)
 그 짐승의 이중적인 본성은 정치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미국의 순진한 이상주의(理想主義)는 강력한 군사·경제·정치적인 권력과 나란히 가고 있다. 실제로 종종 미국이라는 용은 어린양 같 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으르렁거리는 위협의 소리를 낸다.

  (160.6)
 역사는 예언적 이상의 정확함을 입증해 준다. 본 구절에 의하면 이 짐승은 또한 두 가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땅에 거하는 자들과 첫째 짐승 양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편으로 그는 땅의 거민들을 하늘에서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하는 이적과 능력으로 미혹한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런 이미지는 선지자 엘리야의 능력을 생각나게 한다(왕상 18:17~39). 그리고 계시록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두 증인의 능력의 특징이기도 하다(계 11:5). 그러므로 땅의 짐승은 하나님의 이적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든 외교적인 무대에서, 혹은 대형 영화에서 든지, 미국은 항상 세상을 구원해내는 것으로 끝난다. 그 나라의 영향력은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基軸通貨)가 되었다. 미국의 제품과 광고들은 국제적인 미디어에 포화되어 있다. 록 음악, 청바지, 맥도날드 그리고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일용 필수품이다. 참으로 미국은 세상을 미혹하였다. (161.1)
 다른 한편으로 그 짐승은 다른 짐승의 성공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실제로 바티칸은 미국과 특권을 누리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양측은 과거에도 자주 협력해 왔고, 최근에는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언이 내다보았던 첫 번째 역사적인 행동이 국제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61.2)
 실제로 그 짐승 정권의 전체주의적 분위기는 미합중국과 같은 자유국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본 구절은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거래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모든 이들의 신원(身元)이 666이라는 숫자의 틀에 맞춰질 것이다. 예언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면, 자유의 땅 미합중국이 언젠가는 종교적 억압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짐승의 표”가 개성을 짓밟기 위하여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인간의 권위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대체할 것이다. (161.3)
 우리는 작금의 종교적인 상황의 진전에서 예언의 성취를 볼 수 있다. 사회학적·심리학적인, 심지어 오락적인 관심들이 점차로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실용성을 따르거나, 보편적인 사랑과 연합을 추구하는 종교 통합적인 행보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유로 예배의 날을 표준화하려는 노력들이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8 (162.1)
 그러나 이것들은 단순한 증상들일 뿐이다. “짐승의 표”는 예배의 날이나 형식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억압, 복종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하게 되는 등의 모든 잠재적인 가능성을 포함한 짐승, 바벨의 권력과의 동맹을 수반한다. 이러한 지적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교(政敎) 분리에 반대하여 강력하게 투쟁하는 기독교 우파의 부상(浮上)이라든지, 특정한 상황의 전개들은 예언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162.2)
 예언은 전체주의의 냉혹한 탄압으로 종결된다. 666이라는 수는 마치 희망과 인도주의는 더 이상 선택 사항에 없다는 듯이 예언의 마지막 몇 마디를 냉혹하고 무정하게 만든다. (162.3)
 간주곡:천상의 사람들
 별안간 새로운 이상이 선지자를 사로잡고 그는 한 승리한 무리가 희망과 기쁨의 찬양을 노래하는 것을 본다. 이 장면은 우리가 바로 앞에서 듣고 두려워했던 것과는 정반대이다. 바벨의 권력에 의하여 짓밟힌 사람들에게 이 이상은 희망의 소식을 가져다 준다. 바다와 땅 위로 미래의 “시온 산”(계 14:1)이 솟아오른다. 계시록에 나오는 시온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며, 그것은 하늘의 시온을 가리킨다.

  (162.4)
 선지자가 듣는 음성은 하늘로부터 나는 것이며(2절), 144,000은 하늘 보좌 앞에 모여 서 있다. (163.1)
 그분의 임재가 땅에 있는 시온 산 위에 있었던 것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도 같은 “시온 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9 그러므로 시편 48편 2절에서 고라 자손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을 “자폰(Zaphon)18)의 가장 높은 곳”19)(야르크테이 차폰[yarketey tsafon])과 연결시켰을 때 그것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18) “북쪽”을 뜻하는 히브리말(역자 주).
19)우리말 성경에는 “북방에 있는”으로 번역하였음(역자 주).
(163.2)
 이사야 선지자는 “북극”“하늘 ∙∙∙ 하나님의 뭇별 위”를 동일시함으로써 이 사실을 확증한다(사 14:13).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의 반대편에, 어린양은 하늘 시온 산 위에 서 있다. 안정과 질서가 용이 초래한 혼란과 혼돈함에 맞선다. 용의 경우에는 어떤 때는 손에, 어떤 때는 이마에 찍혔던 소유권을 나타내는 인(印)이 여기서는 구속 받은 자들의 이마에 단정하게 새 겨져 있다(계 14:1). 마찬가지로, 144,00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12 × 12,000)을 상징하며, 하나님 없음을 상징하는 666과 대조된다. (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