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와 안식일 제 8 장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 (1)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시는 안식일의 하나님 아버지 (81.1)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는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옵소서” 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심은 하나님이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다”(시 103:14).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심”(시 103:13) 이다. 일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하신 것은 “너희 육신이 약하므로”(롬 6:19) 하나님이 사람의 처지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으로는 약한”(마 26:4) 인생의 처지를 돌보시는 말씀이다. (81.2)
 안식일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심 같이 하나님이 진토인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을 “놓으라”(행 16:35) 하심이다. “네 계집종의 자식”이 숨 넘어가게 되었으니 그들을 “놓으라”(행 16:36) 하심이다. 그들을 놓아 “숨돌리게 하라”(출 23:12) 하심이다. 그냥 두면 네가 하는 꼴이 일 치르게 생겼으므로 “너로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심이다. 네가 설치는 모양이 사람을 잡게 생겼으므로 너희에게 “그 사람들을 놓으라” 하심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 일도 시키지 말라” 하심이다. 안식일에는 너희가 일의 종이 아니고, 탐욕의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 네 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곧 “나의 택한 자녀들” 임을 네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 곧 사람이 진토임을 알라는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진흙으로 지음을 받았다”(욥 33:6)고 고백하라는 것이다. (82.1)
 “소년도 피곤하여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진다”(신 40:29). “나귀의 턱뼈 하나를 집어들고 블레셋 사람 일 천명을 죽인” 삼손도 진흙이다. 그에게 그렇게 큰 승리를 주신 하나님이 한 순간 물 마실 곳을 마련해 주시지 않으므로 “목말라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한 우묵한 곳을 터치어 물이 솟아나게 하시니 삼손이 물을 마시고 정신을 회복하였다”(삿 15:15, 18, 20). (82.2)
 이것이 사람이다. 사람은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고 나의 연약함을 알아야 한다”(시 39:4). 그리고 너의 종들과 네 계집종의 자식과 어리고 늙고 병들고 가난하고 무지하고 죄 많은 나그네 된 자들이 “더 연약한 그릇들”(벧전 3:7)임을 알아야 한다. 안식일은 이러한 날이다. 내 자신이 진토인 것을 깨닫고 “나와 네가 일반으로 진토인 것을” 깨닫는 날이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시고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40) 하고 기도하는 날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25) 라고 탄원하는 날이다. 양식을 먹고 기운 차리게 하소서 하는 날이다. (83.1)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의 변치 않는 철칙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계명의 말은 다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내 집에서 배부르게 먹으라는 것이다. 네 종들과 나그네와 육축에게도 배부르게 먹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은 우리가 일하지 않고 우리의 양식을 축낸 자들을 사하여 준 것 같이, 일없이 양식만 축내 온 우리의 삶을 용서하옵소서 하는 날이다. 즉 “우리가 우리에게 죄진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마 6:12) 하고 탄원하는 날이다. (83.2)
 이 기도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게으르고, 악하여 일하지 않았고, 힘없고 병들어 일하지 못했으며, 무능하고 죄 많아 일이 없던 우리에게 “주님의 용서가 없으면 주님의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이다. 주님의 용서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고, 우리의 용서가 우리에게 죄 진자들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고백이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이 용서받고 우리에게 죄 진자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이라는 고백이다. (83.3)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진토 같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노역에서 “놓여나게” 하는 날이며 인생과 육축을 그 종으로 “잡고”있는 자들에게 “그 신음하는 자들을” 놓게 하는 날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눌림과 갇힘과 잡힘에서 놓여나는 날이며, 탐욕과 일과 종을 내려놓는 날이다. 제칠일은 “놓이고” “놓기”를 기다려 온 날이다. 6일 내내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던 것이다”(욥 14:14). 제칠일은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사 61:1) 날이다.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이는”(사 51:14) 날이다. “여자가 그 병에서 놓이는”(눅 13:12) 날이다. 하나님이 “그 종들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눅 2:29) 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듯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날이다. 우리가 죄의 짐에서 놓여나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죄의 짐에서 놓여나게 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모든 억압하는 것들에게 내 백성을 놓으라고 소리치는 날이다. 내 백성아 갇히고 붙잡힌 것에서 나오라고 소리치는 날이다. (84.1)
 진실로 안식일의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시는”(히 2:15) 분이다. 사람아들도 사람을 놓는 아들이다. 이스라엘 자손들도 바로에게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로 가서 우리 하나님께 [쉼의] 희생을 드리게 놓아주시오”(출 5:8) 하고 외치는 백성이다. 그들의 출애굽은 잡힘으로부터의 놓임이요 안식으로의 탈출이었다. 안식일 교인은 놓인 사람이요 놓는 사람이다. (85.1)
 그러나 6일은 사람을 일과 수고와 탐욕과 두려움과 근심 걱정으로 묶고 붙잡고 붙들고 가두는 날이다. 사람이 수고와 무거운 짐으로 쉬지 못한 날들이다. 바로는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쉬게 하겠느냐”(롬 5:4, 5, 8)는 세상 임금이다. 세상의 자녀들은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요 19:12)고 소리치는 백성이다. 이스라엘의 자손을 풀어주면 바로의 충신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백성이다.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눅 13:16) 하나님과 안식일에 합당치 않다고 팔을 휘두르는 백성이다. 세상 임금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는 자”가 아니다(히 4:15 참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자가 아니다. 세상의 자녀들은 “나와 네가 일반으로 진토이다” 말하는 백성이 아니다.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85.2)
 우리가 진토인 것, 용서가 양식인 것을 기억하는 사람 아들
 진실로 “사람의 재앙이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고난이 진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욥 5:6).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지” 못함에서 재앙이 일어난다. 우리가 용서받지 못하고 밥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함에서 재앙이 일어난다. 인생이 티끌이라는 사실이 재앙의 원천이 아니다. 티끌 같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세상 임금의 나라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재앙의 원천인 것이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야 염치를 아는 것이라 한들 일이 없고서야 어떻게 일해서 밥을 먹으며 지치고 병든 몸과 마음으로야 어떻게 일하여 밥을 먹을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재앙의 원천이다. (86.1)
 진실로 안식일의 아버지와 아들은 “우리의 체질을 아는 자이고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는 자이다.” 진토인 생명들은 기진하면 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럴지라도 일하지 못해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기억하는 자이다. (86.2)
 사람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은 배고픈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으로는 연약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다.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하셨다.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다. “내가 만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막 8:1-3) 하셨다.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할까”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86.3)
 일하지 못하면 먹지도 말아야 하는 세상에서 양식은 일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무력하여 일이 없고 죄 많아 일이 없고 병들어 일 못하고 기진하여 일 못하는 생명들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을 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일없는 사람도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 자기들이 안식일에 거두지 않은 만나로 안식일에 이스라엘 백성을 배불리 먹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진토 같은 인생은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일을 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굶겨 보내면 기진하리라는 것이다. (87.1)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안식일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사람아들들이다. 안식일의 주인인 사람의 아들 예수야말로 인생의 “질고를 아는 자이다.”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이다.” 안식일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탕자도 인생의 질고를 아는 자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부르짖던 사람이다. 흙덩어리 같이 의지가 허약했던 사람이다.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서 허랑 방탕하게 살던” 사람이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어” 곤고했던 사람이다. 아버지의 용서가 없어 어둠 속에서 울던 사람이다. “재산을 허비하고 궁핍하게 살던” 사람이다. “먼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살던” 사람이다. “돼지 치는” 일로 붙여 지내던 사람이다.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주는 자가 없어 주려 죽게 되었던”(눅 15;13-19) 사람이다. 이 사람이 안식일의 아들이다. 사람의 아들 예수와 하나님의 사람아들들은 이 같은 “자기 지식으로 사람들을 의롭게 하고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는 자”(사 53:11) 이다. (87.2)
 “내 영혼이 진토에 불었나이다,” “내가 주려 죽게 되었나이다,” “목말라 죽겠나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부르짖음을 모르는 삶으로는 안식일의 은총을 이해하지 못한다. 6일의 진토 같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제칠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삶으로는 사람아들들에게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에게 죄진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가르친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생의 진토 같은 이 체질이 연약함, 이 얽매임, 이 눌림, 이 배고픔, 이 목마름, 이 죄 많음, 이 질고로 인한 탄식을 모르고서는 안식일에 넘치는 하나님의 놓아줌과 용서하여줌과 먹여 줌과 입혀 줌과 숨쉬게 해줌의 은총을 구할 수가 없으며 그 은총에 닿을 수가 없다. 안식일의 아버지는 배부른 의인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잡혀 있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든 죄인을 찾아오신 것이다(마 9:13). (88.1)
 진실로 안식일의 하나님은 사람과 육축과 모든 살아서 일하는 것들에게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 아버지이시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고되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에게, 그리하여 기진하여 숨 넘어 가게된 것들에게, 일 못하여 굶어 기진하게 된 것들에게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기진하여 일 못하는 것들에게 그리고 6일도 일없이 놀았고, 제 칠일에 놀고 먹게되어 체면 없어 하는 것들에게 “일하지 않았으니 먹지도 말라” 하여 “그들을 굶게 보내면 기진하지 않겠느냐”고 거두어 먹이시는 아버지이시다. (89.1)
 그리고 안식일의 하나님 아버지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만으로 배불리 먹고사는 안식일의 자녀들에게, 일하지 않고 양식만 축낸다고 돌을 던지려는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로 자신의 의와 능력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있다면 내 앞에 나와 보라고 말씀하신다. 진실로 용서받을 죄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89.2)
 안식일의 아들은 일하지 않았고 일하지 못했던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아들이다. 악하고 게을러서 일하지 않았고, 지치고 병들고 죄 많아서 일하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일하지 않고도 양식을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아들이다. (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