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6장 그분은 기다리고 애쓰시는 주님이십니다
 ⑼ 방주의 창을 위에 내었다(창 6: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부터 거듭났다.5(요 3:3). 재림이 가까울수록 머리를 들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눅 21:28; 골 3:1). (67.3)
 ⑽ 방주에는 방들(칸들)이 있었다(창 6:14). 주님은 우리의 쉴 곳이 되시며 영원히 쉴 곳을 예비하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이다(마 11:29; 히 4:1-11; 요 14:1-3). (67.4)
 ⑾ ‘역청을 그 안팎으로 칠하라.’(창 6:14). 방주를 방수로 만들기 위해 안팎으로 역청을 칠하게 되었는데, 여기 사용된 동사 ‘카파르’(כָּפַר) ‘칠하다’는 덮다, 대속하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코페르’(כֹּפֶר) ‘역청’도 동일한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은 죄를 가리기 위해 동물의 피를 요구하셨다. 로마서는 이 진리를 아름답게 제시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67.5)
 로마서 3:25에 화목제물로 옮긴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의 원 뜻은 속죄를 이루는 장소이며 히브리서 9:5에 속죄소로 번역된 단어이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의 피를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 백성을 위해 속죄하고 지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레 16:9, 15-16). 속죄소는 그 위에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그룹 천사들을 두어 속죄소가 하나님의 보좌라는 것을 나타냈다. 하나님 보좌의 역할을 하는 속죄소는 법궤 뚜껑인데 법궤 속에는 십계명이 간직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이 공의의 왕국인 것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이 속죄소 앞에 서는 것은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십계명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은 대제사장을 포함해서 모두 다 죄인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정죄 받아 죽어 마땅한 죄인을 하나님은 그 위를 덮은 피를 통해 그 죄를 간과하고 받아주셔서 하나님과 만나게 해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다. 주님의 보혈을 통해 허물의 사함을 얻고 죄의 가리움을 받으며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다(시 32:1). (68.1)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창세기 6:18).
(68.2)
 창세기 6:18에 성경 전체 속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주제인 언약, 히브리어로 ‘브리트’(בְּרִית) 그리스어로 ‘디아데케’(διαθήκη)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노아 언약은 심판의 배경 속에서 주어진 구원의 약속이다.6 이 언약은 후에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을 거쳐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른다. 예수님은 그분의 보혈로 새 언약을 맺으셨다(마 26:28; 막 14:24). 그분은 새 언약 아래 사는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하나님의 법을 성령을 통해서 새기신다. 그들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히 10:16-18). (68.3)
 인류의 죄 된 본성은 홍수 전이나 후에 변함이 없다(창 6:5; 8:21). 시편기자는 모든 인생이 다 치우쳐 더러운 자가 되었다고 고백했다(시 14:1-3; 53:1-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지만 주님은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홀로 당하심으로 인류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도록 하셨다(롬 3:23-25; 5:1). 예수님은 보혈을 흘리심으로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히 13:20). 신천지에서도 구원받은 이들은 영원히 십자가의 빛 가운데에서 구원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할 것이다(계 5:9-10, 12-13). (69.1)
 참고 문헌
 1. Claus Westermann, Genesis: A Practical Commentary, Text and Interpretation (Grand Rapids, MI: Eerdmans, 1987), 44쪽; Blenkinsopp, ‘P and J in Genesis 1:1-11:26: An Alternative Hypothesis,’ Fortunate the Eyes that See: Essays in Honor of David Noel Freedman in Celebration of His Seventieth Birthday, eds. Astrid B. Beck et. al. (Grand Rapids, MI: Eerdmans, 1995), 9쪽; Laurence A. Turner, Genesis, A New Biblical Commentary (Sheffield, UK: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44쪽.

 2. 창 6:13, ‘케츠 콜-바사르 바’(קֵץ כָּל־בָּשָׂר בָּא) ‘끝이, 모든 육체의, 왔다.’

 3. Arthur Walkington Pink, Gleanings in Genesis (New York, NY: Our Hope, 1922), 103-109쪽. 여기 제시된 해석 속에는 풍유적 해석도 들어 있다. 풍유적 해석(allegorical)은 역사성이 없고 해석자의 지나친 주관성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에 큰 주의를 해야 한다.

 4. 창 7:1‘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은 ‘방주로 들어오라’로 번역될 수 있다. 본 절에 최초로 사용된 히브리어 ‘보’(בּוֹא)는 ‘가다’‘오다’의 이중 의미를 갖고 있다.

 5. 요 3:3‘거듭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아노덴’(ἄνωθεν)은 ‘위로부터’의 뜻을 갖고 있다.

 6. 창 6:18; 9:9, 11-18 (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