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9장의 대홍수 기사는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과 재창조의 배경 속에서 매우 생생하게 제시한다. 인류는 범죄로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위기 속에 빠졌으나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은 노아를 통해 이어진다. 노아는 셈, 함, 야벳의 아버지이며, 셈이 메시아의 조상으로 택함을 받는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씨앗으로 남은 자를 갖고 계신다. (59.2)
애쓰시는 주님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세기 6:1-3).
(59.3)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야돈’(לֹא־יָדוֹן)에서 ‘로’(לֹא)는 ‘아니, 않다’(no, not)를 뜻하는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야돈(יָדוֹן)은 성경에서 창세기 6:3에 단 한번 등장하기 때문에 그 뜻을 분명하게 알기가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에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야돈(יָדוֹן)을 ‘머물다’라고 번역한다. 이 때 ‘나의 영’을 인간 창조 때에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로 본다(창 2:7; 6:17; 7:15). 하나님은 호흡을 사람들에게서 거두심으로 사람들이 죽도록 했다. (59.4)
야돈(יָדוֹן)을 다투다, 심판하다는 뜻을 가진 ‘딘’(דִּין)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번역들이 있다. 야돈(יָדוֹן)을 다투다라고 옮긴 번역은 대홍수 전에 성령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붙들고 애타게 씨름하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KJV와 NIV는 모두 ‘싸우다’(strive, contend)로 번역했다. 하나님은 120년간의 은혜의 기간 동안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쓰셨다. (60.1)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9-20). 현대인의 성경은 어렵게 느껴지는 이 구절의 요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은 갇혀 있는 영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들은 옛날 노아가 배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셨으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영들입니다. 그때 배에 들어가 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명뿐이었습니다.’(벧전 3:19-20 현대인의 성경). 베드로는 이 구절로 예수님이 이미 노아시대에 활동하셨다는 것을 증거한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죄의 감옥에 갇혀 지내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애쓰셨다. 그들은 의의 전도자 노아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멸망했다(벧전 2:5, 한글킹제임스). (60.2)
백이십 년 기간에 대해서 현 인류가 백이십 년 이상 살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수명을 제한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1 그러나 대홍수 후에 태어난 셈의 아들 아르박삿은 사백삼십팔 세까지 살았고(창 11:12-13, 비교, 창 11:10-32), 이스라엘 민족의 부조인 아브라함은 백칠십오 세, 이삭은 백팔십 세, 야곱은 백사십칠 세까지 살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적당하지 않다(창 25:7; 35:28; 47:28). (60.4)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심판을 선고하셨지만 홍수가 일어나기까지 회개할 수 있는 120년간의 유예기간을 주셨다. 지금 우리에게도 주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재림 때까지 얼마나 은혜의 기간이 남아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재림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행 1:7). 그러나 무화과 나무의 연한 가지와 잎사귀가 여름이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자연계와 세상 형편은 재림이 매우 가깝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분명한 때가 성경 속에 없다고 해서 은혜의 기간이 무한정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며 반드시 재림과 세상 끝이 있게 될 것이다. (61.1)
근심하시는 주님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세기 6:5-6).
(61.2)
신인동형설적 표현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한다. 언어적인 면에서 ‘근심하시고’(וַיִּתְעַצֵּב 와이트앗체브)는 창세기 3:16의 해산의 고통(עִצָּבוֹן 잇차본)과 잇차본 같은 말이다. 대홍수전 사람들의 죄는 악함과 부패와 포악함이었다(창 6:5, 11-12). (61.3)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배도를 통해 하나님과 성령께 고통을 주었다(시 78:40; 사 63:10).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근심과 고통은 선지서들 속에 깊이 배어있다. 선지자들은 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열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무감각하게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온 몸과 맘을 다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며 죄 때문에 통곡했다. 선지서들 속에 나타난 무서운 심판에 대한 묘사를 죄에 대한 분노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62.1)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참담한 멸망을 미리 보고 우셨다(눅 19:41-44; 마 23:37-39). 하나님은 죄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이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겔 9:4). 하나님의 인을 받은 이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린 양과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계 7:3; 14:1-5). (62.2)
노아, 예수의 표상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세기 6:8-9).
(62.3)
여호와께 은혜 입은 자 노아.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방주를 지어 가족과 방주 안의 생물들을 구원하였다. 구원자 노아는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창세기 6장에서 노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의인이요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는 구절 속에 나타나 있다(창 6:8-9, 22).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