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2 장 아담, 노아,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이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신”(창 12:7) 세겜에서 그에게 단을 쌓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 예배 행동은 “단을 쌓고 희생을 드리는 것 둘 다 약속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필수적”11임을 나타낸다. 그런 형태의 예배가 “야훼의 이름을 부르니라”(창 12:8; 4:26; 21:33; 26:25과 비교)는 구절 속에 묘사되어 있다. 후에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모든 백성이 “야훼의 이름을 부르리라”(습 3:9)고 하였다. (30.3)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었음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 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을 수 없었다. 그가 여종 하갈을 통하여 그렇게 하려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분의 거룩한 약속을 성취하는 데 무엇인가 공헌하려는 것을 분명하게 허락 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아들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음을 가리킨다. (31.1)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창 15장)는 성경에서 구원의 믿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보증이 된다. 하나님의 행동의 순서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을 믿는 믿음을 인해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셨다(15:6). 주께서는 하늘의 셀 수 없는 별을 가리키며 그의 약속의 예증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15:6). (31.2)
 사도 바울에게 있어 창세기에 나오는 이 역사적인 구절은 그의 복음 기별의 주축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같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한 모델로 높였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 4:23-24). 하나님께서 “이 땅”에 대한 그의 약속을 반복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주 야훼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 15:8)라고 물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공식적인 언약을 맺음으로써 답하셨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은 새 언약 즉 “아브라함 언약”에 통합되었다. (31.3)
 1. 아브라함 언약 체결 의식
 아브라함 언약을 개시한 의식은 상징적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언약 연대의 장엄한 비준을 위해 동물 희생을 준비하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은 자기 문화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의 습관을 따라 동물들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반대편에 나열하였다(15:8-10). (32.1)
 아브라함이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약속이 실현되기 전 “사백년”의 기간 동안 일어날 일들을 그에게 선포하셨다(15:12-16). 창조주는 아모리 인들이 그들 자신의 시험 기간을 갖도록 허락해 주셨다(15:16).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도록 그 계획적인 지연에 대해 끈기 있게 기다려야만 하였다. (32.2)
 의식적인 희생을 드리던 날, 아브라함은 한 놀라운 현상, 즉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비준(문자적으로 ”자르는)하는 의미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였다(15:17-18). 이 의식에서는 하나님만이 행동하고 계시며, 아브라함은 수동적으로 있을 뿐이었다(15:12). 이제부터 심지어 희생 자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할 때에라도 희생은 언약의 중심이 되었다. (32.3)
 이 언약 의식의 의미는, 짐승의 희생적 죽음이 상징하는 바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의 약속을 성취시키려는 그의 계획의 조건 없는 확실성을 스스로에게 서약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책임을 스스로 지신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런 개념에서 모타이어(J. A. Motyer)는 창세기 15장에는 갈바리의 날이 암시되어 있다. 그 때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12고 하였다. (32.4)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아직도 사라로부터 아들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1-2)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고 하셨다. (33.1)
 이렇게 이름을 바꾸는 것은 우리 안에 중생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자식 없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셨다. 왜냐하면 그가 무수히 많은 무리의 조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분명히 하나님의 창조의 기적으로 얻은 아들이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재창조의 약속에 기초하여 정의된다. (33.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tamim]”(창 17:1)고 명령하신 것은 “율법” 개념을 언약의 중심에 도입하면서 아브라함을 그분의 계시하신 뜻대로 살아야 할 의무 아래 두셨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전능하신 분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후에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고 확인하셨다. (33.3)
 사실, 그 때는 어떤 율법도 언급되기 이전이었다. 다만 할례 명령만이 예외였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창 17:9-10, 13-14). (34.1)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언약에 관해서는 두 국면, 즉 약속과 할례 명령이 드러나 있다. 심지어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창 17:13) 종들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가족 중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어 할례를 받아야만 하였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가계로부터 약속된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가 탄생한 얼마 후, 하나님은 할례의 역할을 무효화 하셨다. (34.2)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고전 7:19 비교)고 하였다. 바울에 따르면, 육체의 할례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마음의 할례의 상징이요, 표상이었다. 그리스도의 피가 영원한 기업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샀다“(고전 7:23). (34.3)
 기독교 신자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이며,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골 2:11-12)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침례가 할례를 “대체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 할례는 신자들이 그들의 심령에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손으로 받는 영적 할례로 성취되었다. (34.4)
 2. 아브라함의 순종의 시험
 아브라함의 믿음을 좀 더 충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창세기 2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자발적인 순종을 고려하여야 한다. 믿음과 순종의 연합이 진정한 예배의 중심에 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묘사되어 있다. 당시에 그 약속의 성취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아브람과 그의 아내는 자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35.1)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려 하셨는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이 그의 믿음과 하나님 경배에 대한 참된 성격을 드러내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헌신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의 아들 이삭을 기꺼이 희생으로 드리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은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고 하시고,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다”는 거룩한 선언과 함께 이전의 약속들을 새롭게 하셨다(15-18절). (35.2)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견디었다. 아브라함의 시험의 본질은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한 그의 자발성이 었다(히 11:17). 그와 같이 능동적인 믿음이 “야훼를 두려워 함”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믿음이 반역적인 마음을 자원하는 심령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전적으로 굴복하게 되었다.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