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생기고 나서부터 안식일은 저 에덴적 경험의 얼마를 되찾는 수단이 되어왔다. 미르시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주장하기를
“모든 예식은 신적인 모델 즉 원형을 가지고 있다”12 고 하였다. 후에 그는 또
“유대—기독교의 안식일도 하나의 신(神)의 모방(imitatio dei)이다. 안식일 안식은 주 하나님의 최초의 동작을 재연한다”13고 말했다. 이 원형적 행위의 주기적 반복은 천국 상태로 돌아가려는 욕망을 들어내고 있다. 그 에덴의 상황은
“옛날”에 상실 되었으며 그리고 각 개인의 경험에서 다시 상실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쇠퇴와 파멸과 죄책을 가져온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다른데서 말했듯이 시대를 달리하고 문화를 바꾸면서도 시간에 관한 인간의 행위가 어떤 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현상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행위는 다음과 같이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일을 치유키 위해서는 ‘뒤로 돌아가서’ 그 다음에 ‘세계의 시작’을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14 기원으로 돌아가는 이
“여행”은 소생과 갱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실존의 태고적 뿌리에 접하게 되고 이로써 또 하나의
“탄생”이 가능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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