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행복하려거든(시편강해) 제 1장 참으로 행복하려거든 3. 어찌하여 헛일을 꾀하는가?
 해서는 안 되고, 해보아도 되지 않을 일을 어찌하여 시도하는가?

 어떻게 하려고 하나님과 맞서 싸우려 드는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헛일인데 ∙∙∙ .

 — 시편 2편(33.1)
 시편, 성경의 도토리
 도토리는 도토리나무에 달린다. 그러나 도토리 속에는 도토리나무가 들어 있다. 시편은 도토리처럼 구약 성경에 달린 책 중의 하나지만, 그 속에는 구약은 물론 신약 성경까지도 도토리 속에 든 도토리나무처럼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비롯하여 신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 성경이 이사야서와 함께 시편임을 볼 때, 시편을 “모든 성경의 요약”이라고 말한 4세기의 교부 아다나시우스나. “작은 성경이요, 구약 성경의 요약”이라고 한 루터의 말뜻을 알 만도 하다. (33.2)
 이러한 사실은 시편의 내용뿐만 아니라 짜임새에서도 쉽사리 보게 된다. 150편으로 이루어진 시편은, 거듭되는 “아멘”“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초청과 함께, 같은 뜻인 “할렐루야”를 송영으로 하여 끝마쳐지는 다섯 책으로 현저하게 나뉘어져 있다. (33.3)
 또한 언약에 성실하신 하나님의 성호인 “여호와”가 압도적으로 쓰여진 세 권의 책(제1권:1~41편, 제4권:90~106편, 제5권:107~150편)이 두드러져 있고, 유일하신 창조주의 권능과 통치를 드러내는 칭호인 “엘로힘”, 즉 “하나님”이 더 많이 쓰여진 책들(제2권:42~72편, 제3편:73~89편)도 있어 책의 구분을 한층 뚜렷이 하고 있다. (34.1)
 시편을 왜 다섯 책으로 나누었을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의 다섯 책을 주었고, 이에 맞추어 다윗은 그들에게 다섯 책으로 된 시편을 주었다”라는 간결한 대답이 유대인의 전통적인 성격 주석인 ‘미드라시’에 나온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다섯 책,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거스려 범죄한 인간을 저주에서 건져 축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신 말씀, 곧 “토라”라 불리우는 율법이 쓰여 있다. 그리고 시편의 다섯 책에는 온갖 역경과 고뇌 속에서도 한사코 율법의 말씀을 따라 삶으로써 축복을 경험한 인간들의 체험이 심령에 사무치고 영혼의 산울림이 되어 시와 노래로 반향(反響)되고 있다. 참으로 시편은, 체험을 통해 사람의 심령에 반사된 “토라”(율법)이다. (34.2)
 1편다운 1편, 2편다운 2편
 율법의 말씀 곧 “토라”는 한낱 도덕적인 교훈으로 끝나지 않고 마침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한복음 1장 14절) 이 세상에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너희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요한복음 5장 38절)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34.3)
 그리하여 죄의 저주를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길인 “여호와의 율법”(시편 1편 2절)을 벽두에 소개한 지혜의 시 1편에 이어서, 2편에는 그 말씀의 근원이요 목적이신 ‘기름부음 받은 자’(히브리어로는 메시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를 잇달아 소개하는 메시아의 시(Messianic Psalm)가 등장하고 있다. 계시의 말씀인 “여호와의 율법”, 그리고 율법이 범죄한 인간들에게 소개하려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성경의 요약”인 시편의 처음 두 편에 총론의 주제로 소개된 것은 얼마나 지당한 일인가? 참으로 1편다운 1편이요, 2편다운 2편이다. (35.1)
사단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기상 천외한 부활은 사단과 인간의 합작한 반역을 졸지에 허사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헛일이 되고 말았다.
(35.2)
 그런데 어찌하여 ∙∙∙
 그런데 문제는 바로 시편 2편의 첫마디 말인 히브리어의 람마, 곧 “어찌하여”에 있다. (35.3)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시편 2편 1~3절). (35.4)
 어찌하여 인간들이 감히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에 겁도 없이 도전 할뿐더러, 그들의 유일한 구주인 메시아를 대적하는 어이없는 일, 정신 나간 일을 하는가? 사연을 들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구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세기 3장 15절 참조). 이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아브라함을 메소포타미아 땅 우르에서 불러내셨고, 그의 자손 야곱의 아들 유다 지파에 속한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을 비천한 양 우리로부터 불러내셔서 기름부음을 받게 한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 (36.1)
 그리하여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조상이 될 뿐만 아니라 왕이신 메시아의 의롭고 선한 통치를 만방에 드러내는 상징이 되게 하셨다(이사야서 11장 1~10절; 예레미아서 23장 5, 6절 참조). 그런데 하나님의 이러한 결정을 무시하고 다윗의 왕권과 그의 통치에 도전하는 적대 세력은 엄청났으며, 그의 후계와 나라의 명맥을 끊으려는 시도는 끊임없었다. 그것이 바로 사무엘서와 열왕기, 역대기를 비롯한 구약 성경과 근동 역사에 점철된 반란과 전쟁의 기록이다. (36.2)
 다윗의 혈통이 끊어지거나 그의 왕권이 무너지는 것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통치가 좌절되는 것을 뜻했다. 그것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언되고 약속된 대로 천신 만고 끝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태복음 1장 1절)는 오셨고, 그의 공의로운 통치는 죄로 살벌해진 땅을 사랑과 은혜로 뒤덮기 시작했다. (36.3)
 다윗의 자손이며 동시에 “다윗의 뿌리”(요한계시록 5장 5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다스려온 사단의 통치를 뿌리 뽑는 일이었다. 분노에 찬 사단은 재빨리 악의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끝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약속된 메시아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데 성공했다. (37.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기상 천외한 부활은 사단과 인간이 합작한 엄청난 반역을 졸지에 허사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헛일이 되고 말았다. 이 놀라운 사실이 바로, 사도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시편 2편의 흔쾌(次快)한 의미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시편 선언을 들어보라. (37.2)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도다 ∙∙∙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행전 4장 25~28절). (37.3)
 정말로 안타까운 “어찌하여”이다. 해서도 안 되고, 해보아도 될리가 없는 일을 어찌하여 엄두를 내는가? (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