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6. 베드로의 구원의 경험
 단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발성과 용기를 지닌 시몬 베드로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그와 결부시키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이 되어왔다. 그것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심령이 변화되고 믿음, 사랑, 그리고 소망 안에서 자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열렬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에서 위대한 가치를 보았다. 개심했을 때 베드로는 최고로 총애받는 사도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는 그의 열정적인 충성심과 헌신 때문이었다. 그의 생애는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증언한다. (89.1)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 어느 날 그는 요한이 예수를 가리키는 것을 보았으며 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6)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찾아서 그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다(요 1:41, 42).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았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 —혹은 “구르는 돌”을 뜻하는 “베드로”—라 하리라(요 1:42). (89.2)
 안드레와 베드로는 둘 다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의 주로 즉위하시기 이전의 비하의 상태에 있을 때, 그분을 메시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사명 곧 십자가 위에서의 고난과 죽음을 그들이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90.1)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당신의 봉사의 끝이 가까워졌을 때, 그들이 맞게 될 고난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길 원하셨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는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즉시 대답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모든 참된 신자들의 기본 신조이다. 그것은 무엇이 사람들에게 영생 얻을 자격을 주는지 선언한다(참조 요 17:3). 인간의 지혜나 선량함도 이 믿음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예수는 하나님 그분께서 그 근원이심을 지적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예언된 메시야라는 믿음을 은혜의 선물로 주신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思考)의 결과로 오는 것이 아니다. (90.2)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참되며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추인된 것임을 보증하셨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 모든 참된 신자들의 대표로서 베드로에게 영예를 주고, “천국 열쇠”를 그에게 맡기셨다(마 16:19). 이 “열쇠”는 다른 신자들 위에 군림하는 권위를 상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문을 여는 권위있는 가르침을 상징한다. 열쇠는 원래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교사들에게 주어졌다(말 2:7). 그러나 예수는 자신들의 고귀한 부르심에 대한 계속적인 오용을 인지하시고 당대의 랍비들을 꾸짖으셨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강조 첨가):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마 23:13). (90.3)
 엘렌 화잇은 예수의 증거에 기초하여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91.1)
“천국 열쇠”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 말씀은 예수의 말씀으로서 그 말씀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늘을 열고 닫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이 가납되느냐 혹은 거절당하느냐를 결정짓는 조건들을 선언하고 있다.1)
(91.2)
 따라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마 18:18)은 이제 구원을 향한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문이 율법에 대한 순종에 기초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의 복음 선포에 기초하여 열린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했다(참조 마 10:13-15).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의 모든 증인들 전체에게 열쇠의 권능을 주셨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91.3)
 다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인데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91.4)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92.1)
 “세우다”라는 비유적인 표현은 예수께서 그의 교회를 영적 집이나 혹은 성전과 비교하고 계셨음을 가리킨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 기초 돌로 언급한 흔들림 없는 “반석”위에다 그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베드로는 “산 돌”(the Living Stone)이신 예수께 그것을 적용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벧전 2:4-6). 모든 신자들은 “산 돌(living stones)같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 그 위에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사도들도 아닌 예언의 메시야이신 예수 자신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시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도로서 자신들의 부르심을 수행할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예수께서 하나님의 세우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92.2)
 이 복음 기별은 구원을 향한 문을 열기도하고 닫기도 한다(참고 벧후 2:7, 8).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베드로가 고백한 진리 위에 그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를 놓은 아버지였으며, 예수는 그것의 특별한 기반(基盤, bedrock)이시다(참조 엡 2:19-22; 고전 3:11). 그 무엇도 결코 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오순절 날 성령으로 충만해진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베드로는 그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신앙 고백을 간직했다. (92.3)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베드로가 자라남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메시야의 사명을 이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베드로는 제자가 되었을 때, 예수께서 속세의 왕으로서 지상에서 통치하실 것이라고 여전히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여야 할 것이라는 예수의 계시에 이의를 제기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베드로는 반대했다.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1, 22). (93.1)
 십자가를 회피하려는 유혹은 예수께서 직면해야 했던 가장 강력한 유혹이었다. 일찍이 광야에서 사단은 예수에게 이 유혹을 던졌었다(마 4:8, 9). 이제 베드로가 동일한 유혹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사단의 노력을 예수로 하여금 기억나게 했다. 예수께서는 즉각적으로 대답하셨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그의 반응은 자신의 대속적 죽음이 자신의 사명에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이었나를 보여준다. (93.2)
 베드로는 쓰라린 경험, 곧 고난과 죽음 가운데서 예수를 겸손하게 따르는 자로 그를 변화시킨 경험을 통해 예수의 사명을 배워야만 했다. 최후의 만찬 후 그의 봉사의 끝이 가까웠을 때,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임을 선언하셨다.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예수가 체포되고 권위자들 앞에 섰을 때, 베드로는 만약 자신이 예수와의 관계를 인정할 경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 지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그날 밤 그는 심지어 그분을 알지도 못한다고 맹세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주님을 세 번 부인했다(마 26:69-74). (93.3)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수치스런 부인 때문에 그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는 베드로의 진지하며 마음을 찢는 회개를 받으셨다. 부활 후 그의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베드로가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정확히 세 번 물으셨다. 그리고 세 번에 걸쳐서 베드로는 자기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매번마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위한 목양적 사명을 베드로에게 위임하시고, 그것을 통해 그를 믿을만한 사도로 회복하셨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94.1)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공공연하게 부인했었다. 예수께서도 세 번씩이나 바늘 돋힌 화살과 같은 이 날카로운 질문을 그의 상처받은 마음에 화급하게 던짐으로써 그의 사랑과 충성의 보증을 베드로에게서 끌어내셨다. 모인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회개의 깊이를 나타내셨으며 한때 자만스럽던 제자가 얼마나 완전히 겸손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셨다.2)
(94.2)
 예수께서는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도록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다. 베드로는 자신의 허세와 영적자기 의존이 자아낸 위협을 항상 기억했다. 회개하는 제자에 대한 예수의 용납하심은 제자도와 봉사의 본질적 자격, 곧 예수께 대한 사랑을 가진 사려 깊은 목자로 그를 변화시켰다. 이제 그는 기꺼이 그의 주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참조 요 21:18, 19). 그리고 “마침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요구에 따라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주님이 고통당하신 그 같은 모양으로 고통 당하는 것을 너무도 과분한 영광이라고 생각했다.”3) (94.3)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베드로의 이해가 자라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