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6장 하늘 보좌실의 장면
 이런 모든 것들은 이 24 장로들이 구속받은 인류를 대표하는 상징적 무리임을 보여 준다. 24라는 숫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이스라엘 열두(12)지파와 신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열두(12) 사도를 합친 상징적 숫자이다. 새 예루살렘의 열두(12) 문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붙였고, 열두(12) 기초석에는 열두(12) 사도의 이름이 붙여졌다(계 21:12-14). 그러므로 이 24 장로들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교회 전체를 나타낸다. (96.3)
 구약 시대의 성전 제도에서 제사장들은 24개의 반차(division)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들은 매년 교대로 성전 봉사를 맡았다(대상 24:4-19). 각 반차는 수석(“족장”) 제사장의 지도를 받았으므로 수석(“족장”) 제사장은 모두 24명이었다(대상 24:5). 유대 전승에서 이 수석 제사장들은 “장로(elders)”6라 불리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전 찬양대(singers)도 24조로 조직되었다(대상 25:1-3).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한계시록의 24 장로들이 하는 활동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일(계 5:9-10; 19:4)과,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계 5:8)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구약시대의 지상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찬양하는 레위인들이 하던 일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에 앉은 24 장로들의 역할은 제사장과 왕의 이중 직분을 행하는 것이다(참고 계 5:8-10). (97.1)
 이들 24 장로들은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4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구약의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이상에서는 24 장로의 존재를 말하는 기록이 전혀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룹(Cherubim)이나 스랍(Seraphim) 천사들에 관해서는 자주 언급하지만 24 장로들에 대해서는 말한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은 요한이 본 24 장로들은 하늘의 보좌실에 전에는 없던 새로운 무리임을 의미한다. 이 장로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요한이 본 그 장면이 전개되기 직전에 거기에 나타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한 자들일 것이다(참고 마 27:51-53). 바울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그들과 함께 “올라가셨다”고 하였다(엡 4:8). 이 부활한 성도들은 인류를 대표하여 예수님과 함께 승천하여, 하나님의 공정하신 행위를 목격하고 하늘에서 행해지는 심판에 참여하고 있다. (97.2)
 이들 인류를 대표하는 24 장로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늘 보좌에 오르시는 예식이 준비되는 동안에 하늘 보좌실로 인도되었다.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하늘로 돌아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분이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보좌에 오르시는 즉위식 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온 우주에서 온 사절들과 함께 그 곳으로 안내되었다. (98.1)
 네 생물(4:6b-8)
 하늘 보좌의 양쪽으로 네 생물이 있었으며, 그들은 우주의 네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요한은 이 네 생물은 과거에 그가 보지 못한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네 생물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이상에서 본 존재들과 흡사하다(겔 1:5-14; 10:12-15). 두 선지자가 본 이상의 유사점들은 명백하다. 에스겔과 요한은 둘 다 같은 수의 존재들을 보았고, 또 그 존재들을 “네 생물”(the four living beings)이라고 일컬었다. 두 선지자는 모두 그 생물들의 모양을 사자, 소 또는 송아지, 사람, 독수리에 비유했고, 두 경우 모두 눈들로 덮여 있다고 묘사했다. 끝으로, 두 이상에서 네 생물은 보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더 나아가서 에스겔은 이 네 생물은 하나님께 수종드는 높은 지위의 천사인 그룹들(cherubim)이라고 밝혔다(겔 10:20-22). (98.2)
 그런데 에스겔의 이상에서 보여 준 생물은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나(겔 1:6),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은 이사야의 이상에서의 스랍들(seraphim)과 같이(사 6:2), 여섯 개의 날개를 가졌다(계 4). 또한 이사야의 스랍들과 같이(사 6:3), 요한계시록 4장의 생물들은 끊임없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라고 찬양한다. (98.3)
 이 모든 것들은 그 네 생물이 하나님의 측근에 있는 높임을 받은 천사들이며, 하나님의 대행자와 그분의 보좌의 관리자로서 그분을 섬기는 존재들임을 보여 준다. 그들은 언제나 그 보좌의 부근에 나타난다(계 4:6; 5:6; 14:3). 네 생물이 보좌와 관련된 것은 언약궤 위에 있던 그룹들(cherubim)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그룹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고, 날개를 펼쳐서 속죄소(mercy seat)를 덮고 있었다(출 25:18-21; 왕상 6:23-28).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룹들 사이에 위치한 보좌에 앉아 계시는것으로 자주 언급되어 있다(왕하 19:15; 시 80:1; 99:1; 사 37:16). (98.4)
 이 생물들에 대한 묘사에는 상징적 뜻이 있다. 날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신속성을 의미한다. 눈은 그들의 지능과 분별력을 나타낸다. 그 생물들의 모양이 사자, 소, 사람, 그리고 날아다니는 독수리 등으로 묘사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의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어느 학자가 말한 바와 같이, 천연계에서 가장 고상한 것, 가장 강한 것, 가장 지혜로운 것, 가장 빠른 것을 대표한다.7 모든 창조 세계를 대표하는 이 생물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께 찬송과 예배를 드리는 일에 천군(天軍)들을 인도하고 있다(계 4:8-9; 5:8-9, 14; 7:11-12; 9:4). 부정적인 측면으로 이 생물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이 세상에 집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대행자이기도 하다(계 6:1, 3, 5, 7; 15:7). (99.1)
 천군(天軍)들
 보좌실에 운집한 회중 가운데서 가장 큰 무리는 수많은 천사로, 그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다”(계 5:11). 이 무리가 “모든 만물이” 부르는 찬미에 합세하므로, 엘렌 G.화잇은, 그들이 타락하지 않은 다른 세계들을 대표하는 다른 우주에서 온 사절(使節)들이라고 시사한다.8 이 사절들은 24 장로들 및 네 생물과 함께 사탄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고 하늘 보좌에 오르시는 그분의 대관식을 승인하고 경축하기 위하여 하늘 보좌실에 함께 모인다. (99.2)
 하늘 보좌실의 장면(4:9-11)
 하늘의 보좌실을 묘사한 후, 요한은 자신이 목격한 것에 관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회중이 끊임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그 예배는 네 생물의 찬양의 환호로 시작 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 이것은 이사야의 이상에 나오는 스랍들(seraphim)이 한 찬양(사 6:1-3)의 메아리와도 같다. “거룩하다”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된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강조한다. (99.3)
 이 높임을 받은 천사들이 찬양을 올릴 때마다 구속받은 인간들의 대표인 24 장로들이 즉시로 엎드려 그들의 면류관을 그 보좌 앞에 던지며 환호하여 말하기를 “우리 주 하나님이여,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으며,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0-11)라고 하였다. 그 장로들은 그들의 찬양으로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로 인정하고,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5장에서 그들의 찬양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행위를 강조한다(5:8-10). (100.1)
 요한계시록 4-5장의 예배 장면은 두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으니, 곧 창조(4장)와 구속(5장)이다. 이것은 참된 예배의 요체(要諦)는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구속의 행위를 반복하여 경축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 하늘 보좌의 장면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또한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셨고, 따라서 잃어진 상태에서 고난당하는 인류를 위해 영원한 구원을 베풀어 주실 권능을 가지셨음을 보여 준다. (100.2)
 그 장로들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들의 면류관을 드리는 장면의 묘사는 그 당시 로마 제국의 궁중의식으로 지역 국가의 왕들이 충성과 경의의 표시로 자신들의 면류관을 로마의 황제 앞에 드리는 예식을 반영한다. 로마의 황제들은 “당신은 합당한 황제로소이다”라는 갈채 속에 개선(凱旋)의 입장을 하였다. 또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당시의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는 “우리의 주(主)요 신(神)”이라는 칭호를 스스로 주장했다. 요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주와 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이것은 세상 역사의 끝에 올 마지막 위기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4장의 장면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온 우주의 주와 하나님으로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에게 확증하기 위해 보여 준 것이다. (100.3)
 계시록 4장에 기록된 장면은 어떤 특정한 예언적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 장면은 하늘의 보좌실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를 제공하고 있다.9 영광 가운데 보좌에 앉으셔서 무수한 하늘의 존재들에 둘러싸여 계신 하나님의 모습은 요한이 처음으로 목격한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이러한 장면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에 관한 이상중에서 흔히 보던 것이다.10 성경 본문은, 다니엘의 이상(단 7:9)에서처럼 요한이 바라보고 있는 중에 하나님의 보좌가 보좌실에 설치되었다고 적시(摘示)하지는 않는다. 다니엘이 그가 바라보는 동안에 “하나님의 보좌가 놓이고”(단 7:9)라고 한 것은 그의 이상이 어느 특정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의 이상에 있어서는 보좌실에서의 예배가 일회성(—回性)의 사건이 아니라 하늘에서 정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11 성경 본문은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셔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마다” 24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분에게 경배한다고 말한다(계 4:9). 이것은 분명하게 4장에 묘사된 예배는 하늘의 보좌실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지석적인 행사임을보여 준다. (101.1)
 4장의 장면이 어느 특정한 사건은 아닐지라도 5장에서 이제 곧 일어날 일에 대한 예비적인인 일인 것은 사실이다. 취임 예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온 우주의 사절들—지구에 사는 인류의 사절들(24 장로들)과 타락하지 아니한 다른 우주의 사절들—이 하늘 보좌실로 안내되었다. 이들이 거기에 온 것은 지상에서 승리하시고 하늘로 귀환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분이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하늘 보좌에 오르시는 대관식을 목격하고 경축하기 위함이 었다. 이 화려하고 장엄한 예식이 5장의 주제이다.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