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성소 (재림교회 신학의 심장) 제 5 장 엘렌 G. 화잇의 저술:이미지와 은유의 풍부한 보고(寶庫)
 적어도 재림교인에게는, 엘렌 G. 화잇의 저술들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을 평가하지 않고 앞의 두 장에서 살펴본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재림교인들에게 강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에서 무엇이 문자적이고 무엇이 상징적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다소 흥미 있는 접근방식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컨대 성경이 144,000에 대해 말하는데, 우리는 적어도 그것이 문자적인 수인지 상징적인 수인지 묻는 것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재림교인들의 견해에 비춰볼 때, 엘렌 G. 화잇이 일단 성경의 상징과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면 그 때문에 그것이 문자적인 의미가 된다! 우리가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면, 그녀가 성경의 비유와 상징을 해석 없이 반복할 뿐 아니라 그녀 자신이 사용하는 상징과 이미지와 은유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87.1)
 이어지는 내용에서, 나는 다작하는 저술가요 여호와의 사자(使者)인 엘렌 G. 화잇의 저술에 나오는 풍부한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이미지와 은유에 주의를 돌린다. 여기에 수록한 것은 총망라한 것은 아니고, 본 장을 위해 이러한 현상에 특별히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후로 나에게 감동을 준 진술 중에서 몇 가지 표본을 대표한다. 나는 많은 독자들이 스스로 읽어 나가는 동안 훨씬 더 의미 있고 인상적인 표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87.2)
 이러한 실례들은 앞의 두 장에서 내린 나의 결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나는 그런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렌 G. 화잇의 저술들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상징과 해석의 융통성—내가 제시하려고 하는 하늘 성소의 해석에 여지를 주는 유동성—에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 그것들을 제시한다. (88.1)
 나는 편의를 위해 선별된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진술들은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고 두 번째 진술들은 성소 주제를 다룬다. 각 경우마다 문제시되는 상징들에 신속히 주의를 돌리도록 강조체로 표시하였다.(거의 모든 인용구에서 독자는 내가 강조체로 표시하지 않은 다른 상징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88.2)
 일반적인 주제
 1. “우리가 죄의 흉악함을 가장 절실히 깨닫게 되는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충분히 이해할 때이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드리워진 줄의 길이를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치르신 무한한 희생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심장]은 부드러움과 통회로 녹아 내린다.1) (88.3)
 이 구절을 하늘에서 드리워진 실제적인 줄이라는 뜻으로 본다면 그것이 얼마만큼 합당한가? 혹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상하면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실제로 심장이 녹아 내린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가? 엘렌 G. 화잇이 자신의 말을 그런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안다면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까? 그녀는 우리가 핵심을 완전히 놓쳤다고 단정짓지 않을까?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글에 나타나는 다른 상징과 비유들을 그런 식으로 다룬다. (89.1)
 위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첫 번째 강조된 부분은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과 동격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드리워진 줄의 길이”“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치르신 무한한 희생”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화잇 여사가 말하려는 것이며, 하늘에서 드리워진 문자적인 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89.2)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여기서처럼 특정한 상징이나 은유가 나온 다음에 그것을 설명하는 구절이나 문장이 뒤따라 나오는 경우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자기의 말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취지로 하지 않았음을 간파하려면 우리는 성화된 상식을 사용해야만 한다. 이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거의 모든 예들에서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89.3)
 2. “인간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은 단절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에 온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갈바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놓여 있는 깊은 구렁 위에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리가 건설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이 큰 구렁으로 이끌어 그 위를 가로지른 다리를 가리켜 보이며,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1) (89.4)
 의인이 죽을 때 가는 것처럼 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불리는 곳(눅 16:22)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를 가로지른 실제 다리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화잇 여사의 표현도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됨이 분명하다. (90.1)
 3. “예수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그가 신성 위에 인성의 옷을 입고 인류와 교제하신 것은, 그의 인성의 긴 팔로는 인류를 감싸 안으시고 그의 신성의 팔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붙들기 위함이었다.3) (90.2)
 그녀는 성육신의 신비를 표현하기 위해 의복을 은유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인성이 옷에 비유되었다. (90.3)
 두 번째 부분의 진술과 관련해서도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의 팔 길이는 보통이었다. 예수 당시의 사람들은 그분과 일반 유대인 남자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보았다. 무엇보다도, 마치 인류가 둘러쌀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인 것처럼 모든 인류를 껴안을 수 있는 팔은 고사하고, 그에게는 거인이라는 증거도 전혀 없었다. 우리가 여기서 관찰하고 있는 것은 상징성이 풍부한 언어이며,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전체적인 핵심을 놓친다. (90.4)
 4. 엘렌 G. 화잇은 초기문집이라는 책의 한 부분에서 미국에서 자행되던 노예 매매의 잔인성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겼다. 공의와 심판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으나 이제 곧 깨어날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이곳저곳으로 끌려가 매매된다∙∙∙경건한 남녀 노예들, 부모들, 자녀들,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눈물이 모두 하늘에 있는 병에 담겨졌다. (90.5)
 “천사가 말했다. ‘압제자들의 이름은 피로 기록되고 채찍에 엉켜 있으며 번민과 고통의 눈물로 뒤범벅되어 있다. 4) (91.1)
 여기서 화잇 여사는 미국에서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노예를 거래하는 것에 대해 그녀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찾을 수 있는 가장 힘있는 상징적 표현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예컨대 어떤 사람이 팔려간 노예들의 눈물을 담은 실제 병이 하늘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녀는 깜짝 놀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노예 상인들의 이름이 어딘가에 실제 피로 기록되었고 채찍에 엉켜있으며 눈물로 뒤범벅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이런 표현들은 천사의 말에 담긴 하나님의 진노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생동감 넘치는 상징이다. (91.2)
 성소 주제
 1. 엘렌 G. 화잇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언급하면서, “그분은 우리를 옹호하기 위한 논증으로 그분의 입을 가득 채우신다”5)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기도”, 모든 소원, 모든 발언이 우리를 옹호하기 위한 것임을 얼마나 생생하게 표현해 주는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실제로 자기 입을 논증으로 가득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91.3)
 2. 화잇 여사는 그리스도의 중보에 관한 가장 아름다움 묘사 가운데 하나에서, 그분 자신의 흠 없는 공로에 그분의 백성의 기도와 고백과 감사를 섞어서 담은 향로를 하나님 앞에서 들고 있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또다시 우리의 마음은 문자주의를 넘어서 그 이면(裏面)에 있는 더 깊은 진리에 도달한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향이 “그분의 의(義)의 향기를 발하는”6) 냄새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언급했을 때도 그것은 상징적 논법이다. (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