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8장 위험과 죽음에 대처함 (민수기 18~19장)
 여호와의 “원자로”
 여러 해 전 미네소타 주의 한 농부가 밀을 곡물 저장소로 나르고 있었다. 그는 수레를 끄는 그의 말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들이 거의 도착했을 때, 느릿느릿 걷던 말이 고개를 들어 그 곡물 저장소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거센 토네이도가 갑자기 불어 닥쳤고, 말과 수레는 바람에 날려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그 불쌍한 동물은 다행히 외상을 입지 않았지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 했으며, 곡물은 다 사라져 버렸다. (136.1)
 이듬 해, 그 농부는 같은 말과 수레를 사용해 같은 곡물 저장소에 밀을 나르려고 하였다. 그들이 거의 다 도착했을 때, 그 말은 곡물 저장소를 힐끔 쳐다보았다. 지난 번 그 곳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고는 갑자기 몸을 홱 돌이켜 전 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런 일을 다시 겪을 수는 없었는데 말이다. (136.2)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번, 여호와의 무섭고 신속한 칼을 보았다. 지난번에는 그들 모두 구사일생이었으며, 사망자 수는 엄청났다 (14,700명). 그들은 그런 경험을 더 이상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민 17:12,13). (136.3)
 이스라엘의 성인 세대는 광야에서 죽도록 선고받았다(민 14장). 하지만 최소한 그것은 자연사였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여호와를 심히 불쾌하게 해드렸기 때문에, 그분의 성소에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그분께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안전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다. 물론 그들은 희생제물을 드리려고 성소 뜰로 나아가는 그들의 적법한 특권을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반역의 연고로 자신들이 그토록 많은 곤경에 처했었는 것을 발견했다. (136.4)
 여호와께서는 이해하셨고, 백성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업무 규칙을 마련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가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민 18:1). 즉,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성소에서 실수를 범하면,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와 중보자로서 그 책임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은 하나님의 보응이 더 이상 공동체 전체에게 쏟아지는 일을 초래하지 아니할 것이다(민 16:19-21, 41-49 참조). (137.1)
 여호와께서 이전에 상술하신 대로, 레위인은 제사장을 조력하기로 되어 있었다(민 8장 참조). 하지만 고라와 동료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민 16장), 레위인이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들과, 그리고 최소한 몇몇 제사장들은 죽을 것이었다(민 18:2-7).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단히 의욕적인 제사장들로 구성된, 이 거룩한 영역을 지키는 경비요원들 (무기로 무장했음. 민 25:7 참조)은 성소에서 제사장직을 찬탈하려 시도하는, 레위인을 포함하여 그 어떤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았다. 그렇기에 향로의 결투(민 16장)는 필요치 않을 것이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떠한 반(反) 제사장직 반역도 미연에 재빠르게 방지될 것이었다. (137.2)
 여호와께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분이신지를 기억할 때까지 무단침입자를 즉시 죽이는 일은 극단적이고 “비기독교적” 처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분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고, 새 은하계들과 성운들을 그것이 마치 원반인 양 매우 빠르게 허공 속으로 날아가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그저 말씀하심으로써 수조 톤의 물질들을 자기 뜻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창 1장). 그분의 영광은 소멸하는 불이다(출 24:17; 신 4:24; 9:3; 히 12:29).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성소에 거주하셨을 때, 거기에 농축된 힘은 그것을 마치 원자로처럼 만들었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비요원들이 있어야 했다. (137.3)
 어느 화창하고 좋은 날, 크리스(17세)와 그의 벗들은 볼거리를 찾고 있다가, 미시간 호수가를 탐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랜드 미어 비치에서 일 마일 정도 걸었을 때, 그들은 “무단침입 금지. 위반자는 처벌함”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쿡 원자력 발전소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 팻말이 육지로 접근하는 것만 금지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물 위에서 빙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공기 주입식 2인용 고무보트와 1인용 스킴 보드를 가지고 있었다. (138.1)
 30분 동안 물속에서 노를 저은 후, 그 십대들은 핵발전소를 반 밖에 돌아가지 못했는데, 이미 지쳐가고 있었다. 갑자기 스킴 보드를 타던 소년이 놀라서 고무보트로 뛰어 들어왔다. 왜냐하면 물살이 갑자기 소용돌이치고 거품이 일면서 욕조의 물처럼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기서 속히 빠져나와야 하였다. 그 때 그들은 그들에게로 다가오는 해안경비대의 보트를 발견하였고, 구출되어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138.2)
 해안경비요원은 크리스와 친구들이 제한구역에 들어왔다는 것과, 인근 핵발전소는 냉각과정에서 엄청난 물을 빨아들이는 데, 그들이 익사하지 않은 것이 놀랍다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그들의 부모님들은 핵발전소의 저격수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쏘아 쓰러뜨리기에는 그 십대들이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다고 결정하여 총을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38.3)
 인근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의 핵 가족을 포함하여) 출입 권한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핵발전소를 지키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무한히 더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께서 거주하시는 성소를 보호하는 것은 그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가! 물론, 그분은 그분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돕고 구출하실 그분의 능력을 의뢰하도록 그분의 위대하심을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139.1)
 오늘날 지구상의 성막이나 성전에는 하나님의 쉐키나 임재가 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기를 들고 우리 교회를 지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분의 교회 내에서 주님의 거룩함의 도덕적 경계들을 경건하게 보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고린도 교회의 한 교인이 그의 계모와 함께 버젓이 명백한 죄 가운데 삶으로써 그 도시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손시키고 있을 때 (고전 5:1), 바울은 그 교회 공동체가 그들을 출교시켜야 한다고 명하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4,5). (139.2)
 구약의 신정체제 하에서, 공동체로부터 이런 사람을 축출하는 것은 더욱 극단적이며 영구적이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1). 지금 우리는 국가가 아닌, 교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출교는 구약 의 율법에서 사형을 요구했을 사례들에 적용된다. (139.3)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경계들을 보호하는 일을 극도로 꺼린다. 공의로 인해 일을 복잡다단하게 만들지 않는 자비로 구성된 줏대 없는 감정인, 그리스도인 “사랑”이란 이름으로 어떤 일이든 허용된다. 몇 년 전, 한 목사가 나에게 그가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출교를 요구하는 명백한 죄를 지은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억으로는 그러한 징계가 수행되었다는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 목사가 직원회에 징계안을 제출했을 때, 직원들은 죄 지은 사람들을 출교시키자는 제안을 지지하기를 거부하셨다. (139.4)
 공의를 희생시켜가면서 베푸는 무분별한 자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손상을 입힌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도 해친다. 책임감이 없이 행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평화가 있다고 한다(렘 6:14; 8:11). 그러한 접근 방식은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 바울은, 위기를 알아보고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게 하기 위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고전 5:5) 줌으로써 범죄한 사람을 희망을 가지고 일깨우는 것이 휠씬 더 낫다고 못 박았다. . (140.1)
 파괴적인 행동을 허용하는 무분별한 자비는 또한 무구한 희생자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그 희생자들에는, 교회가 도덕적 표준들을 유지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혼외정사로 인해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이 포함된다. 다른 희생자들은 성희롱, 비방, 재정적 학대 등으로 고통을 당한다. 그러한 사례들은 끝이 없다. 널리 알려진 죄를 범한 자들이 징계를 모면하고 나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니면, 그런 짓을 다시 되풀이 할 수 있는 다른 교회 공동체로 그저 옮겨간다. 회중들은 편지들을 쓰고, 그 상황에 관하여 회의들을 열 수 있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일을 멈추게 만들 뱃심 있는 사람 어디 없는가? (140.2)
 우리는 민수기에 기록된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하심의 이야기가 공동책임 혹은 단체 책임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풍부하게 예시해 주고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는 세상에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 지도자들을 지원하는 일에 있어서 그분께 대하여 책임이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현대 교회 공동체들이 비참하게 실패하고 있는 바, 교인 가족들의 생활양식 통계는 주변의 불경건한 “문명”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 불리는 자들이 그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 때는 바로 지금이다(고전 1장). (140.3)
 위험한 임무에 대한 보상
 공동체 전체를 이롭게 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는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넉넉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영원한 계약 (“소금 언약”)의 일환으로,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그분께 드린 예물들 가운데서 좋은 소득 원천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 배정하셨다(민 18:8-19).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