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와 안식일 제 7 장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2)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아무 염려도 하지 말라(마 6:25) (70.1)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다 이루었고 모든 부채를 “다 갚았고” 모든 의를 다 이루었고 혼인 잔치의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 우리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며 수고와 길쌈하지 않는” 들의 꽃 같이, 공중의 새들같이 세상 염려 없이 하나님의 완전한 돌보심을 믿고 살아야 한다. 사실 나날의 우리의 삶이 우리의 수많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사실인즉 들의 꽃과 공중의 새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신앙이다. (70.2)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느 집에 살까, 어떻게 장가가고 시집갈까하는 염려는 모두 안식일 언약의 밖에 살고, 아버지의 집 밖 어둠에 버려진 이방인들의 몫이다. 사람의 염려와 근심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가 있었더냐”(마 6:27).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룩할 뿐이다”(고후 7:10). (70.3)
 안식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러지고” 주님의 뜻이 “내게도 이루어져야 한다.” 절대로 “육체의 욕심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갈 5:16). 하나님의 일의 다 이룸은 안식이요, 기쁨이요, 거룩이요, 영생이지만, 사람의 일, “육체의 일의 마침은 멸망일 뿐이다”(빌 3:19). 그러므로 안식일의 자녀들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물리치고 저를 영접함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며, 하나님의 완전한 돌보심과 세상 염려를 겸하여 누리지 못한다(마 6:24 참조). (71.1)
 안식일에 세상의 일을 하고 세상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와 구원에 대한 불신의 표시이다. 하나님이 기르시고 입히심에 대한 불신이요, 천사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로 염려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 대한 불신이다(눅 20:27-36). 세상의 자녀들은 어제도 오늘도 수고하고 염려한다. 엿새동안도 수고하고 염려하며 제칠일에도 수고하고 염려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인생들이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계 14:11) 인생들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도 그러하였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염려로 살면서 “홍수가 나기까지도 깨닫지 못했다”(마 24:38). 세상의 자녀들에게는 인자의 임함도 노아의 때와 같다. 제칠일의 임함도 노아의 때와 같다. (71.2)
 제칠일 안식일은 사람의 아들의 “나 있을” 곳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세상 걱정의 노예로 사는 시간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으로, 삶의 주인으로 사는 날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시간의 주체로, 안식의 주체로 사는 날이다. 자유인으로서의 모습이 안식일의 자녀의 모습이다. 자유인의 모습은 일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모습이다. 노역은 종의 몫이다. 근심과 두려움도 종의 몫이다. 우리가 세상 사물과 육체의 종으로 신음해 온 6일의 권세도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끝난다. “염려하지 말라”함은 세상의 종이 되지 말라함이다. 육체의 종이 되지 말라함이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3) 함이다. (72.1)
 “각 사람은 부르심을 입은 그 부르심대로 지내야 한다”(고전 7:20)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천명(天命)이다. 우리에 대한 천명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눅 2:49) 한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천명은 자유이다(고전 7:23). 천명을 받을 당시 나의 사회적 신분이 비록 종이었을 지라도 나는 “주님께 속한 자유자”(고전 7:22) 이다. 안식일은 내가 받은 이 천명을 다짐하고 이 천명을 다 이루는 날이다. 나의 신분을 다 이루고 나의 자유를 다 이루는 날이다. 나의 주권을 다 이루는 날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 되시며, 이 세상에 있어서 내가 주권자 됨을 다 이루는 날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어서 주일인 날이며,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주인이어서 주일인 날이다. (72.2)
 제칠일 안식일은 우리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염려하지 않으므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있으니 두려워 말라” 하시는 날이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시는”(히 13:5) 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이시니 내가 무서워하겠는가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시 27:1) “세상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해야 하는 날이다. (73.1)
 진실로 제칠일은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신”(시 30:3) 날이다. 세상의 노염을 잠시 잠간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은총을 평생이 되게 하는 날이다. 6일 동안에는 울음이 기숙했을지라도 제칠일에는 기쁨이 오는 것이다(시 30:5, 7). 한 날의 괴로움이 한 날에 족하듯이(마 6:34) 6일의 염려와 수고는 6일로서 이미 족하다. (73.2)
 그리하여 제칠일 안식일은 또한 즐거움과 고통과 슬픔과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우는”(빌 4:16) 날이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는 바”(고후 8:15) 사람의 살고 죽는 이치와 하나님의 구원의 이치를 깨닫는 날이다. 이 땅에서는 분수에 넘치는 영화도 가당치 않다 할뿐만 아니라 감당 못할 시련도 주께서 주시지 않으신다는 교훈의 날이다. (73.3)
 한편 제칠일 안식일은 세상일 모두가 처음부터 하다가 그만둘 일이기 때문에, 결국 그만두자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는 날이다. 수고 길쌈하는 일은 우리가 영원히 할 일이 아니다. 심고 거두고 창고에 모아들이고, 밥짓고, 옷 짓고, 집 짓고, 짝 짓고, 장사하고, 죽을 걱정하는 일들은 모두 우리가 언젠가는 그만 두고 갈 세상 염려이다. 우리가 땀흘리고 눈물 흘리며 애쓰며 씨름해 온 여섯 날도 결국 버릴 날이요, 이 세상도 두고 갈 세상이다. 세상의 자녀들은 오고 오는 세상에서 계속 일하고, 염려하고, 장가가고 시집갈 것이나 “저 세상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눅 20:34-46). (74.1)
 사람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다”(시 39:5).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아들은 세상에게 이 일을 일깨우는 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담의 의로운 첫 아들의 이름을 허사, 곧 아벨이라 하라 하셨다. 허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경고하게 하였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여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함”(시 39:6)을 경계하려 함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하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반면 제칠일 한 날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부활의 자녀로서 살아보는 하늘의 한 날이요, 천사의 한 날이다. “온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는 날이 올 때”(고전 13:10)의 삶을 미리 살아보는 한 날이다. (74.2)
 6일은 우리가 땅과 씨름하는 나날이다. 곡식과 과일의 씨를 심고 키워온 날이다. 그러나 안식일은 우리의 영혼 속에 있는 우리의 본향의 기억을 일구고 키우는 날이다. 영원의 씨를 키우는 날이다. 이 세상과 6일은 우리의 손과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려 하지 않으나 안식일에 우리는 자신이 다른 분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 세상은 우리가 떠나가야 할 곳이고, 이 세상일은 우리가 두고 갈 일이다. 세상과 떨어지고 세상일로부터 떨어지고 세상 염려로부터 떨어져야 한다. (75.1)
 안식일은 그런 날이다. 익은 알곡이 떨어지듯,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숙하고 성령의 열매로 익은 사람은 6일로부터 뚝 떨어지고, 6일의 세상일과 염려로부터 뚝 떨어진다. 열매를 맺으려고 나무에서 꽃이 떨어지듯, 크게 자라려고 아이가 엄마 젖에서 떨어지듯 안식일의 아들들이 세상맛에서 떨어지고 6일의 육정에서 뚝 떨어져나간다. 6일 동안에는 어린 시절처럼 이 세상의 향기와 육체의 향기에 혹하였으나 제칠일에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저 하늘의 향기, 저 인자 같은 이의 향기, 곧 하늘나라와 하나님 아버지의 신비를 사모하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시 84:2). 진실로 6일을 살아온 숨은 목숨 같은 숨이다. 목이 갈한 어린 사슴(시 42:1)의 모가지처럼 길고 모질고 슬픈 모가지의 목숨이다. 안식일의 아들은 저 실로암 물 속 같은 제칠일에서 제 그림자를 본다. 그리하여 잃었던 에덴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로 “먼데 산을 바라본다.” 먼데 하늘을 본다. “나의 목숨이 어디서 올까. 나의 안식이 어디서 올까. 나의 구원이 어디서 올까.” (75.2)
 안식일: 주의 구원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날
 안식일은 바라보고 기다리는 날이다. “나라이 임하옵기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날이다.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시며 다시 이스라엘을 택하시기를”(슥 1:17) 바라보고 기다리는 날이다. 그리하여 안식일은 우리가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면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는 날이다. 제칠일로 나아옴이 여호와께로 나아옴이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안위하시려 나아오시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하여 광야 끝을 바라보듯 6일의 끝을 바라본다(출 16:10 참조). (76.1)
 광야의 끝 같은 6일의 끝에 여호와의 영광이 밝아온다. 제칠일이 이르고 있음이다. 제칠일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빛나고 있음이다. 6일내내 “내가 기다리며 바라보리라”(사 8:17) 했던 여호와의 영광이다. 여섯 날 동안 “야곱의 집에 낯을 가리우셨던” 여호와의 영광이다. 지난 6일은 제칠일, 곧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 온”(벧후 3:12) 날들이다. 오늘 이 안식일에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77.1)
 제칠일 안식일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시 62:5) “여호와가 구원한 것을 바라보고”(시 62:5; 98:3) “두려워 말고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출 14:13) 날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양식을 비같이 내리시는 것을 보는”(출 16:4) 날이다. “눈을 열어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음을 보는”(왕하 6:16) 날이다. “눈을 열어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르고 있음을 보는”(왕하 6:17) 날이다. (77.2)
 눈을 들어 궁창을 바라보는 날이다. 궁창이 나타내고 있는바 하나님의 하신 일을 바라보는 날이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바라보는”(계 21:3) 날이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는” 날이다(요 1:36). 눈을 들어 모세가 쳐든 구리 뱀을 쳐다보고 사는 날이다(민 21:8, 9). 눈을 들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들린 인자를”(요 3:14, 15) 바라보고 영생을 얻는 날이다. 눈을 들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히 12:2) 날이다. (78.1)
 안식일은 “여호와의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목도하는”(신 11:7) 날이다. 이스라엘 자손 중 오직 여호와의 행하신 크고 능한 일을 목도하고 아는 세대만이 하나님을 순종으로 섬겼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삿 2:7)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다”(수 24:31). 보고 아는 것이 신앙의 힘이요 순종의 힘이다. 보고 아는 동안 우리의 신앙과 순종과 충성은 계속될 것이다. (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