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삶의 진실은
출애굽기 16장에 소개된 만나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실적으로 예증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6일의 하루하루를
“각기 식량대로”(
출 16:18) 만나를 거두고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음날의 양식으로 염려하였다. 그 날 거둔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 한 모세의 분부를 청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껴둔 만나에는
“벌레가 생기고 [썩어서] 냄새가”(
출 16:20) 났다. 사람의 수고와 염려가 보람있는 결실로 이어지는 것이 정한 이치이면서도, 그 수고와 염려의 결과에
“벌레가 생기고 썩어 냄새가 나는” 현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수고와 염려가 전혀 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밤을 넘긴 만나에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는” 현상도 있다. 들의 백합화 같은 삶, 공중의 새 같은 삶, 전적으로 하나님이 기르는 삶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6일의 삶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야 하는 일곱째 날 안식일을 생각하노라면, 九의 숫자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선호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곧 끝 숫자인 十자의 한발 앞에서 멈추어 서는 겸양과 자제의 정신일 것이다. 또한 제칠일 안식일을 구별하려는 태도는 여백을 강조하는 동양의 묵화의 묘미를 닮았다고 할 것이다. 색깔과 물체로 가득한 서양화의 그 빈틈없음이 때로는 숨 틈 없음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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